열심(熱心)과 한심(寒心)

뜨거운 마음

병만 대리는 모처럼 칼퇴근을 하였다. 일찍 저녁을 마치고 그의 아내 둘선씨와 공원을 산책하며 오붓한 시간을 즐기고 있다. 가족을 위해 항상 애쓰는 남편의 팔짱을 끼고 한가로이 걷는 이 시간이 둘선씨에게는 더 없이 행복한 시간이었다. 길게 늘어진 산책길을 걸으며 두 사람은 멀리서 들리는 음악소리를 찾아 발길을 향했다.

야외음악당에서 하는 오케스트라 공연이다. 음악이 있는 동네에 산다는 것에 행복감을 느끼며 두 사람은 오케스트라의 젊은 지휘자를 바라보았다. 리듬과 박자에 몸을 실어 지휘하는 지휘자가 참 멋있다. 강력한 부분을 지휘할 때는 눈을 감고 팔을 강하게 흔들며 다른 한 손으로는 책장을 넘기는 모습. 작고 경쾌한 부분을 위해선 연주단원을 바라보며 두 손을 모아 작게 지휘하면서 무릎을 통통 튀긴다.

마치, 자 여러분 제 눈 보세요. 이렇게 깡총깡총, 조그맣게 알았죠 하듯 일일이 단원들과 눈을 마주치며 지휘를 한다. “야 참 열심이다. 음악보다 저 사람의 지휘가 더 감동적이야. 음악을 깊이 이해하고 영혼과 몸을 실어 연주를 하고 있잖아.” 몸과 음악, 영혼과 음악이 한데 어우러져 춤을 추고 있는 듯한 그 광경을 보면서 병만 대리는 가슴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저런 열심(熱心)을 보면 내 마음도 뜨거워져. 정말 멋진 사람이네.”


싸늘한 마음

집에 들어와서도 마음을 흔들어 놓았던 그 지휘자의 열정적인 모습을 병만 대리는 잊을 수가 없었다. 동네의 작은 야외음악당에 남이 알아주든 말든 자기 일에 충실한 그 사람을 생각하며 얼마 전 하룡 선배가 들려준 한심(寒心)한 집주인을 떠올리며 순간 마음이 싸해짐을 느낀다.

상황은 이렇다. 마포구 성산동에 세월아파트. 감정은 2억3천이다. 권리분석을 보면 누군가에게 증여받은 듯하다. 집값에 반도 안되는 금액으로 임의경매가 진행되어 결국 집이 하룡 선배의 집이 되었다. 하룡 선배가 집주인 희숙씨를 찾아갔더니 그 긴 시간 동안 자신의 집이 경매로 들어간지도 몰랐다고 한다. 몰랐다기보다는 귀찮으니 여전히 나 몰라라 하는 것이다.

알아서 하란다. 무얼 알아서 하란 말인가. 이제는 집을 내어주어야 할 판인데. 경매가 진행되는 그 긴 시간동안 법원에서도 방문이 있었을 테고 우편물도 왔을 텐데, 그동안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던 건지. 어찌할 바를 모르는 희숙씨에게 하룡 선배는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법원에 가서 배당을 받을 수 있게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그래봐야 이래저래 비용 뜯기고 시세보다 낮은 금액으로 낙찰 받았으니 희숙씨가 받을 금액을 생각하면 손해가 이만 저만이 아니다.

꼼꼼히 살피고 어떻게든 챙겼으면 이렇게 멀쩡히 있다가 코 베이듯 집을 잃지 않았을 텐데 하는 마음이 들었다. 집도 누구에게 증여를 받은 듯하고. 자기의 땀과 애정이 어린 집이 아니면 그 곳에 마음을 쏟기가 쉽지 않은 듯하다. 마음이 뜨거운 사람과 마음이 차가운 사람. 주변사람까지 감동을 시키는 뜨거운 마음과 쓴웃음만 짓게 하는 한심한 마음. 서로 다른 두 가지의 마음가짐을 보며, 한 사람이 얻은 결과와 또 앞으로 펼쳐질 또한 사람의 미래를 생각하며 병만 대리는 그 날 하루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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