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국토위 통과한 도시정비법 개정안 졸속 개정으로 실효성 없어

국회법 개정안 논란으로 혼란이 거듭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6일 재건축·재개발 등 도시정비사업을 총괄하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법안소위를 통과했다.

정치권에서도 난제로 여겨졌던 도시정비법 개정은 그간 각 의원들이 발의한 개정안들이 제대로 처리되지 못하고 계속 국회에 쌓여가고 있었다. 국토위에서는 이를 처리하기 위해 도정법만을 별도 논의하는 여야 4인의 협의체를 구성해 심의를 진행할 정도로 노력을 기울였으며 이 과정에서 갑론을박이 있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보면 이번 개정안은 여·야 협의, 서울시 등 지자체와의 협의를 거치면서 당초 안에서 크게 후퇴해 실질적으로 현장에 도움이 될 수 없는 수준이 되고 말았다.

또한 일몰제 범위 확대, 정비구역 직권해제 기준 도입 등으로 일선 현장에는 개선이 아닌 개악의 수준으로까지 비춰지고 있다.

일단 이번 개정안에는 재개발·재건축 구역을 해제하는 일몰제의 범위 확대, 지자체 장 등의 직권해제 기준 포함, 공공관리제 적용 사업장에서 시공사와 공동시행의 경우와 LH 등 공기업이 업무를 대행하는 경우 조합설립인가 이후에 시공사를 선정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 등이 포함됐다.

먼저 사업이 지지부진한 재건축·재개발 구역을 자동 해제하는 일몰제 적용 대상을 확대했다. 기존에는 2012년 2월1일 이후 정비계획을 수립한 구역과 추진 주체가 없는 곳만 일몰제 적용대상이었으나 이번 개정안에 따르면 2012년 1월31일 이전 정비계획을 수립한 구역 중 추진위원회를 구성한 곳도 일몰제 적용을 받게 되며 법 개정 뒤 4년간 조합 설립 신청이 없으면 정비구역에서 자동으로 해제된다. 전국적으로 최대 461개 추진위원회가 새로 일몰제 적용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별 사업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구역을 해제하는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일몰기한 연장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조합원 30% 이상의 동의를 받아 신청하거나 시·도지사가 직권으로 2년 안에서 일몰기한을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지자체장이 직권으로 정비구역을 해제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으며 이에 대한 구체적 기준은 조례에서 정할 수 있도록 했다. 직권 해제 때는 지자체에서 기 투입비용인 매몰비용을 추진위 뿐 아니라 조합의 경우까지 확대해서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그간 관심이 집중됐던 공공관리제는 당초 주민들의 선택에 따라 필요한 곳만 공공관리를 적용할 수 있도록 한 원안에서 크게 후퇴해 시공사 선정시기만, 그것도 조합과 시공사가 공동으로 사업을 시행하는 경우와 LH 등이 조합 업무를 대행하는 경우에만 한정해 시공사 선정시기를 조합설립인가 이후로 환원할 수 있도록 하는데 그쳤다.

이밖에도 사업시행자가 무상양도 받는 대상에 현황도로 추가, 조합설립의 변경인가 신청 또는 법원의 무효·취소 확정으로 재인가가 필요한 경우 토지등소유자의 동의서 재사용 허용, 안전사고 우려주택 안전진단 재실시, 서면 또는 대리인을 통한 의결권 행사 허용, 정비사업전문관리업체 업무의 위탁금지 등의 내용도 포함되었다.

하지만 이번 개정안에서 정비사업 현장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내용은 무상양도 대상에 현황도로를 추가하는 것 정도일 뿐 나머지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내용과 실효성이 거의 없는 내용에 오히려 정비사업에 악영향을 주는 내용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현재 재건축·재개발을 진행하고 있는 초기 사업장의 경우 가장 큰 어려움으로 초기 사업자금 마련과 정비사업 분위기 침체를 꼽는다.

추진위 단계부터 조합설립, 사업시행인가까지 진행하기 위해서는 다수의 협력업체도 선정해야하고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지만 공공관리 하에서는 자금력을 갖추고 있는 시공사를 선정할 수 있는 시기가 원래의 조합설립인가 이후에서 사업시행인가 이후로 늦춰져 대다수 현장에서 초기자금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때문에 공공관리제를 각 현장의 특성에 맞게 주민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고 정비사업의 투명성 확보를 위해 공공관리가 불가피하다면 시공사 선정시기만이라도 원래의 조합설립인가 이후로 환원시키자는 공감대가 폭넓게 형성되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조합과 시공사간 공동시행 또는 LH등이 조합의 업무를 대행하는 경우에만 시공사 조기선정을 허용하도록 해 실효성이 전혀 없는 개정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공동시행의 경우는 현재 일반적인 재건축?재개발 사업에서 도입된 사례가 거의 없는 형태로 법에는 재개발이나 도시환경정비사업의 경우 ‘주민 과반수의 동의를 얻어 건설업자 등과 공동으로 사업을 시행할 수 있다’라고만 되어 있다.

때문에 재건축 사업의 경우 적용가능 여부도 불분명한데다 구체적 기준과 절차도 명시되어 있지 않아 실제 현장에 도입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더욱이 리스크가 큰 정비사업의 특성을 감안할 때 일부 사업성이 뛰어난 강남 재건축 현장이 아니고서는 시공사들이 굳이 공동시행에 나설 이유가 없다.

상대적으로 사업성이 낮은 강북 재개발 지역들이 더욱 크게 느끼는 초기자금 문제를 전혀 해결할 수 없는 빈껍데기 개정이 되고 말았다.

출구전략 확대로 인한 정비사업 분위기 침체도 걱정스러운 부분이다.

효율적인 정비사업을 위해서는 사업기간 단축을 통한 사업비 절감이 필수적인데 이를 위해서는 주민갈등과 소송 등이 없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와 같이 일몰제 확대, 직권해제 등과 같은 부정적 기류가 확대되면 정비사업 추진이 가능한 곳에서도 주민갈등을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고 이는 곧 사업지연과 주민부담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이번 국토위를 통과한 법 개정안을 살펴보면 각 국회의원들이 입법 발의한 내용 중 정비사업에 도움이 되는 개선안들은 당초 안에서 크게 후퇴한 반면 규제책, 출구전략 등에 관한 부분은 거의 원안대로 통과된 것이 대다수여서 현장의 의견을 중시하는 필자로서는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주거문제는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된 분야이기에 그만큼 정치적으로 이용되기 쉽다. 하지만 실생활과 가장 밀접하게 맞닿아 있기에 더욱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현재 국토교통위 의원들 중 복잡다단한 정비사업과 도시문제에 대해 법 개정시 어떤 부분이 제대로 동작하고 어느 면에서 부작용이 발생할 지 제대로 판단할 수 있을 만한 전문성을 갖춘 인물이 과연 얼마나 될까. 항상 현장논리가 아닌 정치논리로 좌우되는 주택정책을 접할 때마다 전문성을 갖춘 리더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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