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딴 입지, 까다로운 입주자격 등 문제 … 공급 자랑 말고 품질 높여야

전국 110곳 3만5,000호(당초 계획 3만7,431호)가 공급된 2018년 행복주택이 구랍 24일 모집공고에 이어 지난 1월10일 청약접수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행복주택은 대학생, 신혼부부, 사회초년생을 위해 직장과 학교가 가까운 곳에 지어지는 임차료가 저렴한 도심형 아파트. 박근혜 정부 출범 초기인 2013년 4월 ‘지역경제 활성화, 일자리 창출, 주민간의 소통공간 등을 통해 경제․문화․공공활동의 거점으로 개발한다’는 목표 하에 도입됐다.

철도부지와 도심 유휴부지를 활용해 지어지는 반값 임대주택으로 원래 이름은 ‘희망주택’이었지만 ‘국민행복시대’라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 비전에 맞춰 행복주택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과거 도시 외곽이나 그린벨트에 지어졌던 공공주택과 달리 도시 내부에 지어져 교통이 편리하고 접근성이 좋아 관심을 모았다.

행복주택 계획 발표 당시 국토교통부는 ▲젊고 활력이 넘치는 주거타운 ▲입주민․인근주민 모두 일자리 걱정 없는 행복주택 ▲복합개발과 지역 특화전략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 ▲소통․문화․복지․공공생활의 장으로 조성 ▲안전성 최고, 소음․진동 최소의 다섯 가지 원칙을 적용해 프로젝트를 성공시킨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지금, 행복주택의 현주소는 어떻게 되는지 짚어보자.

 

∥낡은 공공시설, 행복주택 탈바꿈 열풍

행복주택은 기존 택지지구나 보금자리주택 사업, 신도시, 역세권개발사업 등에 지정하거나 아예 새로 소규모 유휴부지를 찾아서 짓고 있다. 그런데, 역세권 민간소유부지의 경우 부지 가격도 만만치 않을뿐더러 매입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실제로 행복주택 도입 초기에도 수도권 전철 경의중앙선 가좌역을 데크화 하여 짓는 가좌행복주택지구 등 공공시설이나 국공유지가 주요 사업지였다. 또, 지역주민들의 반대 등 상황에 따라서는 행복주택을 지으려다 무산되는 경우도 있는데, 서울 양천구 목동지구가 대표적이다. 저소득층의 유입을 꺼리는 지역 이기주의의 발로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현실적으로는 홍수를 조절하는 유수지를 매립하여 사업을 하려고 했던 점과 인구 밀도, 교통 사정 등등 여러 가지 이유로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아 결국 무산됐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근래에 들어서는 노후한 공공시설 등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지난 9일 국토교통부는 울산과 제주 등 전국 8개 도시의 노후 공공청사를 공공임대주택과 청사 등으로 개발하는 ‘노후 공공청사 복합개발 사업’ 8곳 1,167호의 주택건설 사업계획을 승인했다고 발표했다. 노후 공공청사 복합개발 사업은 도심 내 좁고 노후한 공공청사를 공공임대주택과 신청사, 주민편의시설 등의 복합용도로 개발하는 방식이다.

국토부는 “임대수요가 풍부한 도심 내에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확대하는 한편 시설 노후화로 주민 이용이 불편했던 청사 등을 재건축함으로써 공공서비스의 수준도 함께 향상시킬 수 있다”며 “다양한 주민편의시설도 함께 건설하여 지역사회의 공동체 회복, 낙후지역 활력 제고, 구도심 활성화 등의 도시재생 효과도 기대된다”고 밝혔다.

국토부는 이 같은 방식으로 오는 2022년까지 1만호를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이미 2017년 말 지자체를 대상으로 사업대상지를 공모하여 선도 및 공모사업으로 전국 42곳 6,300호를 사업대상지로 선정하여 추진 중이며, 작년부터는 수시공모 방식으로 전환하여 사업을 희망하는 지자체는 언제든지 공모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

서울시도 노후 공공청사를 복합개발해 임대주택을 공급하겠다고 나섰다.

서울시는 2022년까지 노후 청사 및 공공시설 40곳에 공공주택 2,500여 호를 마련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관련 법 개정 등을 추진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 2월 착공한 구로구 오류1동 주민센터 복합시설과 현재 추진 중인 9곳에 더해 30곳을 추가로 지정할 예정이다.

해당 자치구가 토지를 무상임대하고, 개발은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가 맡는다. 서울시 사업승인이 떨어지면 SH공사는 복합시설을 조성한 후 자치구에 기부채납하는 방식이다. 사업비는 1호당 1억여 원이 투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30%는 국비로 지원되며 부족한 사업비는 임대보증금 등으로 자치구가 조달한다. 자치구는 큰 투자 없이 새 청사를 갖고, SH공사는 토지 매입 부담 없이 공공주택을 공급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서울의 공공청사 활용 행복주택은 구로구 오류1동 주민센터가 시동을 걸었는데, 주민센터와 편의시설, 청년 주거공간이 들어서는 복합시설로 재건축되고 있다. 지하 4층, 지상 18층, 연면적 1만340㎡ 규모로 2020년 3월 준공 예정이다. 지상 2~5층은 동주민센터, 지상 6~18층은 행복주택으로 구성된다.

다만, 시유지의 경우 복합개발에 큰 문제가 없지만, 국유지는 1% 이상의 사용료를 내야 하는 부담이 있다. 서대문구 신촌동 주민센터도 청년층 대상의 행복주택과 동주민센터 등이 들어서는 복합청사로 탈바꿈할 계획이지만, 국유지인 탓에 연간 1억1,800만원의 사용료를 부담해야 하는 처지에 있다. 서울시는 국토부에 법률개정을 요청하고, 2022년까지 서울시내 공공주택 비율을 10%로 끌어올리겠다는 방침이다.

 

∥“전형적인 보여주기식 정책” 비판도 많아

정부와 지자체가 앞다퉈 “노후 공공시설을 활용한 공공임대주택 공급한다”며 행복주택 띄우기에 나서고, 심각한 주거불안을 겪고 있는 청년세대 등 취약계층이 행복주택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서민은 없는 서민정책”, “보여주기식의 생색내기 정책에 불과하다”는 비난도 만만치 않다.

일단 행복주택 입주자격이 상당히 까다롭다. 신혼부부의 경우, 해당세대의 소득합계가 도시근로자 월평균소득 100% 이하로 되어 있는데, 3인 기준 500만 원 이하여야 한다. 신혼부부의 경우 맞벌이 부부가 많은데, 소득기준으로 따지면 맞벌이 부부보다 외벌이 부부에게 더 유리한 조건이다. 여기에 가구의 총 자산이 2억4,400만원 이하여야 하고, 소유한 자동차도 2,545만원 이하여야 한다.

행복주택 주요 대상자 가운데 하나인 대학생들은 보증금 부담이 만만치 않다. 월 임대료는 10~20만 원 정도로 저렴하지만, 학자금 융자에 허덕이는 학생들이 몇 천 만원에 이르는 보증금을 감당하기란 쉽지 않다.

가락시영아파트를 재건축한 송파 헬리오시티에는 행복주택 39·49·59m² 타입이 공급됐는데, 임대보증금은 7440만 원~1억5,200여만원이고 월 임대료는 26만400원~53만2400원이다. 1,401가구 모집에 1만6,744명이 신청해 평균 12대 1의 경쟁률을 보일 만큼 인기를 모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지도 않다. 59m² 타입 중 10가구가 신혼부부 우선 공급이었는데, 537명이 몰려 53.7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그 다음으로는 39m² 타입에서 청년 우선 공급 물량 168가구에 8315명이 신청해 49.5대 1을 기록했다. 하지만, 39m²타입의 고령자 일반공급은 100가구 모집에 84명만 신청했고, 같은 타입의 신혼부부 일반공급도 255가구 모집에 301명 신청에 그쳐 평형별 경쟁률 양극화가 극심했다. 아무리 자녀가 없는 신혼부부라고 하더라도 너무 작은 평형을 ‘행복주택’이라고 공급하니 관심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강동구의 한 행복주택 단지를 둘러본 뒤, "혼자서 살기에는 괜찮겠지만 신혼부부가 살기엔 좁아 보인다“라고 했을 정도로 행복주택에서 행복한 신혼생활을 즐기기엔 면적이 너무 좁다. 대상자의 주택 만족도를 고려하지 않은 채 정책당국의 ”몇 호 공급“이라는 실적주의가 불러온 결과이다.

 

∥10% 넘는 공가율, 근본적 해결방안 마련 시급

은평구에 위치한 한 행복주택단지는 쓰레기 소각장 바로 옆에 있다. 행복주택에 당첨되었다는 사실에 기뻐 부지를 찾았다가 소삭장 옆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 아연실색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 공급할 때 주변에 쓰레기 소각장이 있다는 안내는 전혀 없었다. 그저 ‘주변에 혐오시설이 있을 수도 있다’는 문구가 소개책자에 숨겨있듯 적혀있을 뿐이었다.

경기도의 한 행복주택 단지는 대중교통과의 접근성이 매우 나빠 외면을 받았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는 외진 곳에 지어놓고 ‘행복주택’이라고 분양한다. 학교에 가거나 출근을 해야 하는 행복주택 대상자들을 고려했다면 지어질 수 없는 입지였다. ‘긴 퇴근길을 해소해줄 수 있는 행복주택’이라고 선전했지만 실상은 ‘긴 퇴근길을 더 길게 해주는 행복주택’이니 입주자가 적을 수밖에 없다.

노후한 공공청사를 활용한 행복주택이 근래 대세를 이루는 것은 외곽에 지어진 행복주택의 참담한 실패를 만회하기 위한 궁여지책에서 출발한 셈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현재 행복주택 1만8,353가구 중 공가는 2054개, 공가율은 11.19%에 달한다. 이 가운데 1년 이상 공가인 곳도 424호이며, 6개월 이상 공가인 곳은 1,630호이다. 영구임대 1.3%, 공공임대 1.1%, 장기전세 0.9%, 국민임대 0.5% 등과 비교할 때 상당히 높은 공가율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지어진 행복주택이니 공가율에 따른 손해 역시 국민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부랴부랴 공가발생 시 입주자격을 완화하도록 법령을 개정하기는 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도심의 가장 효과적인 주택공급수단인 재건축․재개발을 투기로 몰아 규제하기보다는 적극적인 지원책을 마련하는 것이 양질의 주택을 충분하게 공급하는 근본적인 방법이다. 정비사업을 규제했지만 집값이 떨어지기는커녕 공급부족으로 오히려 앙등했다. 행복주택은 다양한 주택의 공급이라는 측면에서 꾸준하게 추진할 필요는 있지만, 잠시 머물다 가는 주택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진짜 행복을 꿈꿀 수 있는 양질의 주택을 공급하는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는 것을 정책당국이 깨달아야 할 때이다.

저작권자 © 주거환경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