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높이관리 가이드라인’ 연구용역 발주 … 완화 가능성 관심

새로 건립되는 공동주택의 최고 층수를 35층으로 제한해온 서울시 정책이 변화 가능성을 보이고 있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달 25일 서울시는 “2030 서울플랜에 의한 높이관리, 경관기본계획 등 서울시 관리원칙 하에 지역특성별 정교한 높이관리 관리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도시관리 차원의 지상공간정책 가이드라인 연구’ 용역을 발주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지역특성에 맞는 정교한 높이관리를 통해 서울의 이미지를 상승시키고, 명확한 높이관리 원칙 제시를 통해 높이관리에 대한 불필요한 논란 및 고질적 민원을 예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5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올해 말까지 연구용역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35층 규제’ 완화 신호탄?

서울시는 지난 2014년 5월 ‘2030 서울 도시기본계획’을 공포한 이래 줄곧 “재건축시 35층 이상 아파트 절대 불가” 방침을 고수해 왔다. 35층 이하 규제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이름을 따 ‘박원순 룰’로 불리어 왔다. 이번 서울시의 연구용역이 관심을 모으는 것은 반포와 잠원, 압구정 등 서울 한강변 주요 재건축 추진 단지들이 “50층 아파트를 만들겠다”며 서울시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상황에서 발표됐기 때문. 이들 단지들은 “35층 규제가 완화된다는 신호가 아니겠냐”며 기대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현재까지 서울시는 35층 규제 완화와 관련해 어떠한 확답도 하지 않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도시기본계획은 5년마다 재정비를 하게 되어 있다. 이번 용역도 도시기본계획 재정비 시점이 도래한 데 따른 것”이라며 “물론 그동안 논란이 됐던 높이 기준 사안도 이번 용역을 통해 보완하고 수정하게 되는 과정을 거치게 되지만, 그렇다고 이번 용역이 재건축 35층 룰에 변화를 주기 위한 사전작업은 아니다”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하지만 서울시가 이번에 연구용역을 발주하면서 “서울 도시기본계획인 ‘2030 서울플랜’에 명시된 용도지역, 지구, 건축 사업기준 등 기존제도의 분석을 통해 규제와 유도가 균형을 이루는 높이관리 제도로 개선방안 제시”라고 명기했다는 점에서 35층 룰을 고수하던 서울시가 입장을 선회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일단 완화 가능성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도 용역 공고를 내면서 “규제와 유도가 균형을 이루는 높이관리기준 마련”과 “지역 특성에 맞는 정교한 높이관리”라고 밝혔다. 게다가 “이번 연구에 건물 높이를 현행 기준보다 높일 수 있는 지역을 선정하고, 이들 지역에 기준보다 높은 건물이 들어섰을 경우 경관이나 일조권 문제를 시뮬레이션 하는 내용까지 포함돼 있다”는 보도도 잇따랐다.

이 보도에 따르면, 학술용역으로 층수 기준을 완화할 수 있는 지역을 찾는 것이 이번 용역의 목표이며, 서울시 관계자도 “현재 서울시의 높이 관리 정책은 2030 서울시 도시기본계획과 용도지구, 경관계획 등 다양한 기준에 의거해 이뤄진다”며 “각각의 정책별로 흩어진 높이 관리 정책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보고 같은 높이 규제를 받는 지구라도 높이를 완화해 줄 수 있는 곳이 있는지 찾기 위해 연구를 진행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연구 결과는 층수 규제를 포함한 서울시의 모든 도시․건축 계획에 적용되는 ‘2040 서울시 도시기본계획’에 반영될 예정이다.

 

∥서울시는 왜 35층 이상 불가 방침 고수했었나

‘35층 이상 재건축 불가’라는 ‘박원순 룰’은 그동안 강남과 서초 등 주요 재건축 단지들에게 좌절을 안겨줬었다.

서울 강남재건축의 상징과도 같던 대치동 은마아파트가 대표적이다. 은마아파트는 기존 용적률이 197%로 높다. 통상 재건축 사업성은 기존 용적률과 재건축 후의 용적률 차이가 많을수록 높아진다. 일반분양 물량이 많아야 분양수입이 증가하고, 조합원들의 분담금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기존 용적률이 200%에 가까운 은마아파트로서는 제3종 일반주거지역 최대 용적률인 300%를 받더라도 일반분양이 적어 조합원들의 분담금이 만만치 않게 된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일부 용지를 준주거지역으로 종 상향해 500%까지 용적률을 높이고, 최고 49층의 초고층아파트로 재건축해 사업성을 높인다는 게 은마아파트 재건축조합의 계획이었다. 초고층아파트는 일반 아파트에 비해 조망권과 희소성이 반영돼 분양가와 입주 후 가격이 상승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초고층아파트 재건축에 목을 매던 은마아파트는 4번이나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심의에 도전했지만 층수 문제로 좌절해야만 했다. 결국 2017년 말에는 49층 재건축 계획을 포기하고 35층 재건축으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서울시의 ‘35층 이상 절대 불가’ 방침에 조합원들이 손을 든 것이다.

서울시가 재산권 침해 논란에도 불구하고 35층을 고집했던 이유는 뭘까. ‘2030 서울플랜’에 명시된 35층 규제는 ‘토지이용계획’의 ‘도시공간 구조를 고려한 높이관리’라는 항목에 있다. 이에 따르면 서울시 내 3종 주거지역의 주거용 건물 높이는 35층 이상을 넘어설 수 없다. 당시 서울시는 35층인 이유에 대해 “오세훈 전 서울시장 시절 한강변에 초고층을 허용했던 ‘한강변 공공성 재편 정책’ 이전에 심의를 통해 결정한 최고 층수”라며 “전문가·시민의 의견을 모아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또, 서울시는 2017년 6월 발간한 「누구를 위한 높이인가」라는 책에서 “초고층 건축물을 짓는 데 무조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아니다. 경쟁력 강화가 필요한 중심지는 복합개발을 통해 50층 내외의 초고층 개발을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높일 곳은 높이고 관리할 곳은 관리한다는 원칙 속에서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이다”고 높이관리 기준을 만든 이유를 설명했다.

서울시는 이 책에서 “초고층을 주장하는 이유는 조망 때문이다. 조망이 좋은 아파트 상품을 만들기 위해 ‘높이’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문제는 이 좋은 요소들이 단지 밖에서도 좋은 요소로 작용하고 있는지 여부다. 만약 초고층의 조망권을 주장한다면 주변 사람들이 초고층아파트의 답답함을 조망하지 않을 권리도 함께 생각해 봐야 한다”며 “도시의 경관은 우리 모두의 재산이다. 서울이 모두 높은 건축물로 가득 찬다면 오히려 서울은 지금보다 삭막한 도시가 되고 말 것이다. 주거지는 주거지답고, 중심지는 중심지다울 때 바람직한 도시의 경관이 형성되고, 그에 따라 도시의 경쟁력과 가치도 올라간다”고 밝혔다.

하지만 서울시의 ‘35층 이상 재건축 절대 불가’는 현재의 성냥갑아파트가 조금 높아진 것에 불과한 재건축을 양산, 오히려 도시경관을 해칠 우려가 있을 뿐만 아니라 조합원들의 재산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과도한 규제라는 비판을 꾸준히 받아왔다. 은마아파트뿐만 아니라 반포와 압구정 등 재건축을 추진중인 단지들이 “50층 규모 초고층아파트로 재건축하겠다”는 계획을 노골적으로 밝히며 서울시와 대립각을 세워왔다.

결국 서울시는 재건축단지들의 지속적인 민원 제기에 과도한 규제라는 비판까지 더해지자 도시기본계획을 기존 2030년에서 2040년으로 높여 잡으면서 높이관리를 포함한 모든 분야를 재점검하는 것으로 보인다.

 

∥재건축단지 및 업계 기대감 상승

서울시의 입장 변화는 재건축사업을 추진중인 단지들과 건설업계에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그동안 서울시의 ‘35층 이상 재건축 불가’ 방침이 워낙 확고부동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용역발주와 함께 최근 박원순 서울시장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서울시 높이 관리 기준에 대해 “2040 서울시 도시기본계획 수립 시 지역별·특성별 실효성 있는 관리 방안도 추가적으로 논의할 수 있다”며 한 발짝 물러선 입장을 밝히는 등 변화 조짐이 보이고 있어 해당 사업지와 건설사 등의 기대감이 부쩍 상승하고 있다.

특히 종 상향을 통해 최고 50층 재건축을 추진하고 있는 송파구 잠실 장미 1·2·3차 아파트나 압구정 일대 최대규모인 압구정3구역 등이 사업추진에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에 밀려 초고층아파트 계획을 포기했던 은마아파트도 다시 계획을 변경할 것으로 보이고, 반포지구도 기대감이 상승하고 있다.

서울 강남권 및 한강변 재건축단지들의 사업추진에 걸림돌로 작용하던 ‘박원순 룰’이 완화될 경우 이들 지역을 중심으로 다시 한 번 재건축 열풍이 불어올 것으로 보인다. 다만, 서울시가 35층 이하로 규제하면서 밝혔던 것처럼 한강변에 초고층 아파트를 허용할 경우 거주민이 아닌 시민들의 도시 경관 조망권 침해와 더불어 기존에 35층 이하로 허가를 받은 재건축 아파트 단지들과의 형평성 시비 등이 불거질 수도 있다. 서울시가 어떤 해법을 내놓을지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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