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우택 이사장 / 사단법인 주거환경연합

독도는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적으로 당연히 우리나라 영토라고 우리는 마땅히 주장하지만 간교한 일본은 그런 우리의 주장을 아랑곳하지 않고 교묘한 국토 침탈행위를 1905년 이래 계속 행하고 있다.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것은 한반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것에 격분하여 필자는 이곳저곳에 산재되어있는 자료들을 한 곳에 모아 이 자료를 통해 독도를 사랑하는 사람들 나아가서 우리나라 모든 국민들이 독도의 연혁과 분쟁사를 이해하는데 보탬이 되고 독도를 사랑하는 마음이 더욱 깊어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이 자료를 정리하였다.

 

1696년(4029, 丙子)

숙종 22년 1월 일본막부(幕府)는 일본인의 울릉도 도해금지령(渡海禁止令)을 내린 전달서를 조선측에 보내오다. 그러나 독도 도항은 금지하지 않았다.

8월 다시 울릉도에 출어했던 안용복은 평산포(平山浦) 사람 이인성(李仁成) 등과 함께 일본어선을 추격하여 울릉도와 독도(子山島-于山島)를 거쳐 2차 渡日하다. 그들은 백기주로 들어가 울릉자산양도감세(鬱陵子山兩島監稅)라 가칭하고, 태수에게 전일의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을 따짐. 백기주 태수는 울릉도 독도지역을 침범한 일본인들을 처벌하였고, 안용복에게 “두 섬은 이미 조선에 속했고, 다시 침범하는 자가 있거나, 대마도주가 함부로 침범할 경우 엄벌에 처하겠다”고 약속 함. 안용복은 막부에 대한 상소를 취하하고 강원도로 돌아옴. 肅宗實錄 권30

 

1697년(4030, 丁丑) 조선 숙종 23년, 신증동국여지승람 권 45

숙종 23년 2월 일본 막부는 독도가 조선영토임을 공식인정하고 대마도주도 1697년“일본 어민들의 울릉도 漁採를 금한다”는 막부의 결정을 동래부로 서계를 알려 와서 조일간 울릉도 영유권 분규가 매듭지어졌다.

조선정부는 3년에 1차례씩 三陟營將 등이 울릉도를 순찰하는 울릉도 搜討制度를 정식화하였는데 그 기원은 1694년 “울릉이 조선판도”라는 서계를 대마도로 보낸 직후에 있었던 三陟僉使 張漢相의 울릉도 순찰이 된다. 수토가 정기적으로 실시됨에 따라 동해의 지리가 밝혀졌다. 지도 작성에 있어서도 鄭尙冀(1679∼1752)의 東國地圖에 보이듯이 울릉도와 우산의 위치와 크기가 정확하게 표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일본과의 국경도 가늠하게 되었다.

 

1699년(4032, 己丑) 조선 숙종 25년

안용복은 일본 에도막부로부터 울릉도. 독도가 조선 땅임을 인정하는 증서를 받다.

 

1714년(숙종 40) 일본과의 국경도 가늠은 강원도 어사 趙錫命의 보고에 "울릉도 동쪽으로 도서가 잇달아 있고 이 섬들은 倭境과 접하게 된다"고 한 것이 그 예이다. 이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독도, 즉 松島에 관한 기록인 사이토[齋藤豊仙]의 隱州視聽合記에 "일본의 서북경은 은주(隱州:隱岐)로써 한계를 삼는다"라고 한 것과 부합된다. 이처럼 17세기 말엽 이후 조선측의 울릉도·독도에 대한 지리적 지식이 확대되어간 반면에 일본 측은 위축되어갔다. 그 까닭은 막부의 도해금지령에 따라 일본 연해민들의 울릉도 왕래가 거의 끊어졌기 때문이다. 그런즉 연해민들의 울릉도 왕래가 재개되는 19세기 중엽(막부말기∼明治維新 초기에 해당)에 이르러서는 島名의 혼란이 일어났다. 울릉도를 다케시마[竹島:울릉도]로, 독도를 마쓰시마[松島]로 부르던 것이 오늘날은 독도를 죽도[竹島] 즉 다케시마로 호칭하는가 하면 량고시마[リャンコ島]라는 서양식 이름을 붙이기도 하였다.

 

1726년(4059, 丙午) 조선 영조 2,『英祖實錄』 권1

10월 강원도 儒生 李昇粹가 鬱陵島에 邊將을 두고 주민을 모아 경작하게 하자고 상소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다.

 

1785년(4118, 乙巳) 조선 정조 9, 『三國通覽圖說』(林子平, 1785)

일본의 실학자 하야시시해이(林子平)가 저술한『三 國通覽圖說』의 附圖 三國接壤地圖와 朝鮮八道地圖 에서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의 영토로 표기하다.

 

1848년(4181, 戊申) 조선 헌종 14, 포경선 체러키호 항해일지』.

4월 17일 미국 포경선 체러키(Cheroke)호가 독도를 발견하다.(북위 37도 25분, 동경 132도 00분)

 

1849년(4182, 己酉) 프랑스의 포경선 리앙크루호가 독도를 발견

 

1854년(4187, 甲寅) 조선 철종 5,『올리부차호 항해일지』

4월 6일(러시아) 푸쟈친 제독이 지휘하는 러시아 극동원정대 4척 중 하나인 올리부차호가 마닐라에서 타타르해협으로 향하던 중 독도를 발견하다. 서도는 섬을 발견한 함정의 이름을 따서 ‘올리부차’로, 동도는 올리부차호의 최초 함정 이름이었던 ‘메넬라이’로 명명되었고, 두 섬은 조선의 영토로 파악되다. 독도에 관한 울리부차호의 탐사내용은 바스토크호의 울릉도 관측내용 및 팔라다호의 조선 동해안 측량내용과 함께 러시아 海軍誌 1855년 1월 호에 실려 1857년 러시아 해군이 작성한 조선동해안도의 기초자료가 되다. ☞참고자료『올리부차호 항해일지』(1854), 러시아『해군지』(1855), 일본 해군성 수로국의 조선동해안도(朝鮮東海岸圖)(1876), 러시아의 해군성 수로국의 조선동해안도(1857, 1882)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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