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시공자 선정기준, 경쟁입찰 ‘유명무실’

“제안서의 스무 가지를 다 빼라는 것 아니냐. 그걸 다 빼고 나면 아무 건설사나 다 할 수 있다. 명품 만들려면 특별한 것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을 빼면 닭장에 불과하다.”

 

지난 28일 한남3구역 재개발조합 총회에서 한 조합원이 정부당국의 합동점검 결과에 격앙된 목소리로 반발했다. 조합은 조합원에게 유리한, 가장 최선의 조건을 제시받기 위해 경쟁입찰을 진행했다. 그런데 그런 유익한(?) 조건을 모두 빼고 다시 입찰을 진행하라니. 경쟁입찰을 진행한 의미가 무색해지는 상황이다. 과도한 시공자 선정 기준에 대한 실효성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특화설계 NO, 대안설계 10% 제한”

한남동 686번지 일대 5816세대(분양 4940세대, 임대 876세대)를 짓는 한남3구역 재개발사업은 사업비 7조원, 공사비 약2조원에 이르는 메머드급 정비사업이다. 한강과 남산 조망에 용산이란 입지적 장점 등을 고루 갖춰 대형 건설사로부터 주요 타겟으로 지목돼왔다.

지난 3월 사업시행인가를 얻은 이후 시공자 선정을 준비한 한남3구역은 현대건설, GS건설, 대림산업 등 국내 굴지의 대형건설사가 참여의사를 밝히며 수주전이 진행됐다. 참여사들은 백화점 입점, 임대주택 제로 등등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해 수주열기는 더욱 뜨거워졌다.

결국 정부당국은 특별점검에 나섰다. 합동점검 결과 전체 20여건에 달하는 법령 위반 소지 사례를 밝히며 입찰 절차에 제동을 걸었다. 그 사례로는 ▲3.3㎡당 분양가 7200만원 보장 ▲자회사를 통한 재개발 임대주택 매입 ▲이주비 전액 지원 ▲조합원 인테리어 비용 5천만원 환급 등등 있다.

정부당국은 도시정비법 제132조 ‘재산상 이익 제공’, 정비사업 계약업무 처리기준 제30조 ‘시공 외 제안사항’ 및 ‘과장·허위광고’ 등을 근거로 진행 중인 ‘입찰을 중단하고 새로이 입찰을 진행하라’고 권고했다. 건설3사에게는 시공자 선정 기준을 위반한 혐의로 수사를 의뢰했다. 더불어 조합이 시의 시정조치를 무시하고 입찰을 강행할 경우 도시정비법 위반으로 수사를 의뢰할 것으로 밝히는 등 초강경 입장을 밝혔다.

이와 관련 서울시 당국자는 “정부와 서울시가 말하는 대안설계는 사업비 10% 안팎의 변경에 해당하는 것으로 시공의 품질을 개선해서 약간의 단가를 조정하는 것이지, 문제가 된 사업장처럼 전 가구를 한강조망으로 바꾸고 테라스 단지를 늘리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조합, 안팎으로 부담 중첩

정부의 입찰중단 방침에 조합은 안팎으로 시달리는 모양새다.

재건축·재개발 정비사업에 있어서 시공자 선정절차는 특별한 입지를 지니고 있다. 외형적으로는 도급계약에 불과하나 실질적으론 공동시행자를 선정하는 것과 다름없다. 게다가 조합설립과 사업시행인가 등을 거치는 과정이 전체 정비사업의 밑그림을 그리는 과정이었다면 시공자 선정 이후부터는 공사비와 장차 조합원이 부담할 분담금 등이 결정되는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

조합원 입장에서는 본인들에게 유리하게끔 건설사로부터 최대한 좋은 조건을 받아낼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조합원들이 컨소시엄 배제를 강력하게 주장한 것도 최상의 조건을 이끌어내기 위함이었던 것. 길고도 어려웠던 지난 과정들을 거쳐서 기껏 유리한 조건들을 이끌어냈는데, 이를 모두 없던 것으로 하라 하니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이다.

28일 한남3구역 총회장에서 한 조합원은 “조합은 퀄리티가 높은 건설사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 그것을 왜 정부가 막고 있냐. 조합이 잘못한 것도 없는데, 시장경제에서 당연한 권리를 막는 것에 대해서는 행정소송을 제기해야 한다”며 정부 입장을 성토하기도 했다.

 

∥“과도한 시공자 선정기준 조정해야”

일반적으로 정비사업조합은 신축 아파트 품질 제고 및 향후 가치 상승을 위해 특화설계에 적극적인 입장을 띄고 있다. 작금 한남3구역에서 발생한 논란의 핵심은 가치상승을 위한 조합의 특화설계와 정부의 ‘10% 범위내 대안설계’의 충돌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말하자면 시장경쟁체제에 의거 진행되는 시공자 선정 입찰에 대해 정부가 과도하게 개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정부 입장대로 입찰 과정이 고착화된다면 시공자 선정은 단순히 단가경쟁으로 한정될 가능성이 높으며, 그 외 변수로는 건설사의 네임벨류나 브랜드 인지도 외에는 딱히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공자 선정이 여타 변별력 없이 공사단가 경쟁으로 제한되면 조합이 필요로 하는 창의적이고 차별화된 아파트 건립은 어려워 보인다.

다른 관계자는 “정부가 집값 상승을 우려한 것은 이해하지만 정당한 입찰경쟁까지 가로막는 것은 문제가 있다”면서 “이런 경향이 계속되면 건설사 참여가 어려워지고 주택시장은 위축돼 되려 주택공급 감소 및 집값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울시내에는 한남3구역을 비롯해 시공자 선정이 이뤄지지 않은 많은 정비사업 현장이 남아있다. 시공자 선정을 치를 때마다 이런 문제점이 발생한다면 사업주체인 조합은 물론이고 정부당국도 그 책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이번 한남3구역을 기점으로 정부의 과도한 개입은 자제해야 할 것이며, 현실과 부합하지 않는 시공자 선정 기준은 조정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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