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남자로 태어나 한번 해볼만한 일이데요”

“막상 입주를 한다고 생각하니 고인이 되신 조병철 전 조합장님이 더욱 생각납니다.” 26일 입주를 시작한 당산 철우 재건축조합 안문성 총무이사는 입주의 기쁨을 묻는 질문에 먼저 이렇게 대답한다. 어느새 그의 눈가에는 이슬이 맺혀 있다.

94년 재건축사업을 처음 추진할 때부터 사업에 참여해 온 안 이사는 당산 철우의 ‘살아있는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 증명하듯 안 총무는 지난 9년여의 세월을 엊그제 일인 양 줄줄 늘어놓는다. “시공사를 무려 세 번씩이나 교체하면서 도대체 사업을 진행이나 할 수 있을까 막막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말하는 안 이사는 “그래도 누군가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이런 기쁨을 맛볼 수 있는 것 아니겠냐”고 반문한다. 아무래도 고 조병철 조합장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재건축사업을 추진하며 우연한 기회에 함께 일하게 된 두 사람은 조합장과 총무직을 수행하며 사업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한창 일할 때는 서로 눈빛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고. 그러나 갖은 어려움 끝에 동부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하고 나머지 문제를 처리하던 중 조 조합장이 갑자기 쓰러졌고, 급기야 위암 말기 판정을 받고 말았다. 결국 조 조합장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2000년 6월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안 이사는 당시에 대해 “아마 그 때가 개인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때인 것 같다”며 “갑자기 논의 상대가 없어지다 보니 한 5개월 동안 멍하게 지내며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고 밝힌다. 그러나 사업은 계속 추진해야 하는 상황. 현 이병학 조합장이 업무를 승계했고, 다시금 안 이사는 ‘총무’로서 역할을 다 하기 시작했다.

외국계 회사에 근무하며 건설분야 노하우를 익혔던 안문성 이사는 당산 철우에 거주하며 동 대표를 역임하기도 했다. 안 이사는 당시 단지내 노후화가 심각해지는 것을 보며 재건축의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했고, 몇 년만 고생하면 새 집에서 살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 사업에 동참하게 됐다. 그러나 사업 초기 경제적인 여건이 열악하다 보니 사업추진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IMF를 겪으며 시공사 문제까지 점점 꼬여 매년 한 업체씩 변경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면서 '방향을 제대로 설정하고 있는가'하는 불안감이 엄습하기도 했다고.

하지만 안 이사를 부추긴 것은 역시 조합원들의 이해와 협조였다. 안 이사는 “우리 조합은 대부분 철도 공무원들이 조합원이라는 특수성이 있다”며 “신분이 그렇다 보니 어떤 경우에는 다소 보수적이라는 느낌도 받지만 대부분 조합원들은 상대방에 대한 이해가 많은 편”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일단 집행부에서 어떤 사안을 결정하면 믿고 따라주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되곤 했다는 설명이다.

이와 아울러 안 이사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도 조합을 끝까지 지키는데 한 몫 했다. 안 이사는 “일단 나를 버려야 하더라”며 “개인적인 시련도 있었지만 조합원들의 발언에 대해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임했더니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즉, 안 이사는 일단 상대방의 말을 최대한 듣고 난 후 자신이 발언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았다는 것. 결국 자연스럽게 인생에 대한 관점도 ‘더불어 사는 삶’에 맞춰지게 됐다. 이 같은 안 이사의 삶에 대한 태도는 이전까지 돈 벌어 가정에 충실하면 그만이었지만 이제는 나를 돌아보며 다른 사람들의 삶까지도 돌아보게 됐다고 한다.

안문성 총무이사는 재건축사업에 대해 “최대한 돌팔이가 되라”고 주문한다. 한 분야만 전문적으로 아는 것보다 관련 분야에 대해 두루 조금씩 알아둬야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는 것. 또한 조합 실무자들이 사업 종료 후 재투입될 수 있는 기회도 많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안 이사는 “조합 일을 하다보니 알게 모르게 쌓이는 노하우가 느껴진다”며 “하지만 아쉽게도 사업이 끝나면 특별히 다시 일할 만한 곳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아울러 빼놓지 않는 당부가 “이전 재건축사업장에서 추한 모습을 많이 보이다보니 진정 봉사하는 맘으로 일한 사람들까지 매도당하는 예가 많다”며 “부정적인 시각이 많은 것 또한 사실이지만, 그렇지 않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라도 꾸준히 노력하는 사람이 많아져야 할 것”이라고 충고한다.

이제 사업을 정리하는 상황에서 안문성 이사는 “9년을 여기에 매달리다보니 어느새 소홀해진 부분이 많이 보인다”며 “특히 가정이나 일가 친척 등에 제대로 하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할 따름”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안 이사는 “이제부터 남은 인생은 한번 나 자신을 위해 살아보려 한다”며 “원래 스릴 있는 것을 좋아해서 앞으로 번지점프나 패러글라이딩 같은 스포츠도 한번 해보고 싶다”고 말한다.

26일 35평 새 아파트에 입주하는 안문성 총무이사. 그는 재건축사업에 대해 “남자로서 한번쯤 해 볼만한 일임에 틀림없다”며 “새 아파트가 완공되고 보니 새삼스럽게 긍지와 자부심이 느껴진다”고 소감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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