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과장, 이제 저녁식사도 같이 못하겠어." 대형 건설업체 토목부문에서 근무하는 이 모 과장(38)은 최근 회사에 찾아온 하도급업체 임원에게서 우스갯소리처럼 이런 얘기를 들었다.

최근 들어 원 발주업체인 대형 건설업체가 외부 인사와의 식사 자리도 조심하며 꺼리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이 과장은 "극히 일부 현장이지만 하도급업체가 과거 벌어진 사소한 비리를 빌미로 발주업체에 공사 수주 압력을 넣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고 푸념했다.

공사를 주지 않으면 관계 당국에 고발해 '윤리'를 지키지 않는 업체라는 오명을 주겠다는 협박 아닌 협박이다.

건설산업기본법 시행령 개정안이 마련되자 '윤리 경영'이 건설업계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개정안에 따르면 건설공사와 관련해 금품을 주고받을 경우 액수에 따라 최장 1년까지 영업정지 처분을 받게 된다.

단, 업체가 평소 직원교육을 통해 '주의ㆍ감독의무'에 충실했다면 영업정지 처분을 면할 수 있다.

최근 대형 건설업체는 경영기획실이 직접 나서 내부 비리접수와 감사를 실시중이며, 전직원을 대상으로 1년에 서너 차례 윤리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비리 적발시 '주의ㆍ감독의무'를 충실히 이행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업계 관계자는 "앞으로 비리 적발시 개인 차원으로 돌리거나 회사측이 주의ㆍ감독의무를 충실히 이행했다는 점을 내세우게 될 것"으로 예상했다.

현대차그룹 건설사인 엠코는 최근 자체 사이버감사실을 열고 임직원의 불공정한 업무처리나 부정 비리에 대해 제보를 받고 있다.

주로 임직원 공금횡령이나 유용, 금품 향응ㆍ접대요구 등이 주요 제보 대상이다.

회사 관계자는 "제보 내용은 기획실 팀장과 본부장 등 극히 일부만 알 수 있도록 비밀에 부친다"고 설명했다.

GS건설은 직원들의 식사비용까지 체크하기 시작했다.

회사 관계자는 "현장 직원들이 외부 인사와 1인당 5만원 이상으로 식사할 때는 모두 보고하도록 최근 지시를 내렸다"며 "이를 지키지 않으면 엄중 문책할 계획 "이라고 설명했다.

중견 건설업체인 호반건설은 인터넷에 윤리경영 사이트를 열고 기획실에서 직접 관리에 들어갔다.

회사 관계자는 "내부 온라인 비리 접수를 실시한 지 얼마 안돼 비리 제보보다 민원사항이 많은 편"이라며 "회사 임원에 대한 비리 제보가 있었으나 검증결과 허위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업계는 개정 건산법의 '첫 시범사례'는 사업장이 많은 대형 업체가 될 가능성이 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대한건설협회 감사실 관계자는 "당초 협회는 법인대표 비리에 대해서만 영업정지 처벌을 내리도록 정부에 건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현장 직원 개개인 비리가 회사 영업에 치명적 영향을 주는 만큼 사업장이 많은 업체일수록 몸을 사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찬동 기자]
자료원 :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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