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할 수 없는 공무원의 숙명, 민원
피하지 않고 부딪치며 해결해간다

1000만 서울시민의 공복(公僕)인 서울시청 공무원 가운데 바쁘지 않은 사람이 있으랴만, 그 가운데서도 최근 가장 바쁘고 고달픈 사람을 꼽자면 주거정비과 정비계획팀 윤호중 팀장도 빠지지 않을 터이다. 가장 민원이 많은 부서로 꼽히는 게 주거정비과이고, 그 중에서도 재개발·재건축 등 정비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공무원들의 고충은 어느 개그맨의 말처럼 “경험해보지 않았으면 말을 마라”이다. 극성스러운 민원이 많다보니 공무원들이 받는 스트레스 지수가 꽤나 높을 수밖에 없다. 이러니 공무원 사이에서는 기피업무 1호로 꼽힌다.

정비사업에 있어서의 공공관리자제도 도입, 재건축 가능연한 완화 조례 개정안 발의 등 연이어 굵직굵직한 이슈가 터져 나오는 요즘, 윤호중 팀장은 더욱 바쁘고 더욱 고달파졌다. “ 민원인들의 방문이나 상담이 끊이지 않아 낮 시간에는 정상적으로 업무를 보기 힘들만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이지만, 그래도 그의 표정에서는 좀처럼 짜증을 찾아보기 힘들다. 아무리 귀찮은 민원이라고 하더라도 그는 친절함을 잃지 않는다.

서울시립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한 윤호중 팀장은 91년 노원구를 시작으로 용산구와 도봉구 등 주로 강북지역의 구청에서 근무를 했고, 서울시 감사담당관실과 지하철건설본부(9호선)를 거쳐 지난해 2월부터 현재의 업무를 맡게 됐다.

윤호중 팀장은 “민원인을 상대하고, 상담 전화를 받고, 진정서와 질의서를 검토하고 답변하는 등 각종 민원을 처리하다보면 어느새 업무시간이 끝난다. 그래서 통상적인 업무는 민원인이 없는 일과시간 이후에야 비로소 처리할 수 있게 된다. 퇴근도 늦고 휴일에도 근무를 하는 일이 많아 너나 없이 피로가 누적되어 있고 지쳐있지만, 이것 역시 공무원의 숙명이려니 하고 적응하고 있다”고 말한다.

민원 가운데 무엇이 가장 많은가 슬쩍 물어보았다. 단연 1위가 관리처분단계에서의 민원이란다. 정비사업에 있어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이 조합원 분담금이니, 이 분담금이 사실상 결정되는 관리처분단계에서 민원이 폭주할 수밖에 없단다. 특히 사업 초기단계에 장밋빛 계획에 혹해 정비사업에 동의했는데, 막상 관리처분단계에서 예상했던 것보다 분담금이 많아지게 되면 백이면 백 다 민원을 제기한단다. 분담금이 많아 불만과 후회에 사로잡히는 조합원들의 민원이 적지 않다고.

그런데, 사실 이런 민원의 대부분은 서울시에서 해결해줄 수 없는 것들이다. 윤 팀장은 “조합이나 해당 구청에서 처리해야 할 것임에도 무작정 서울시로 민원을 내고 보는 경우가 많다”면서 “재건축이나 재개발 정비사업을 원활하게 추진하기 위해서는 추진위나 조합은 사업초기에 장밋빛 청사진만 제시하기보다는 정확한 근거에 의한 실질적 사업계획을 세워야 하고, 조합원들은 다른 사업장과 비교하며 수치적으로 분담금을 낮추기보다 자신들의 지역이 처한 현실을 직시하고 한마음으로 사업을 진행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충고한다.

아울러 윤 팀장은 “정비사업이 초기부터 실질적이고 현실적으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좋은 설계업체를 선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지금까지는 구역 면적에 확보 가능한 용적률을 예상해 최대한 사업성이 높은 쪽으로 ‘그리는’ 경우가 많은데, 막상 실제 사업시행인가 과정에서 변동이 있을 수밖에 없고, 또 시공사를 선정한 후 시공사 브랜드에 부합되게 설계변경이 이루어지면서 조합원 분담금 상승 시비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급공사 등에서 이루어지는 것처럼, 초기 단계에서부터 정확한 데이터를 토대로 가장 합리적이면서도 도시의 개발방향에 부합되는, 실제로 적용 가능한 설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공공관리자제도 도입과 관련해 윤 팀장은 “제도 도입 초기인 만큼 다소 혼란스러운 부분이 없지 않다. 그러나 그동안 정비사업 추진과정에서 발생한 제반 문제점을 바로잡는다는 측면에서 도입된 제도라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본다”면서 “다만, 앞으로 세부적인 내용은 좀 더 보완하고 가다듬어야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현재 우리 팀뿐만 아니라 각 파트별로 제도가 안착할 수 있도록 대안 마련에 주력하고 있으니 조만간 가시적인 결과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고 밝혔다.

“매사에 어렵다고 피하기보다는 직접 부딪치며 해결해나가는 것을 신조로 삼고 있다”는 윤호중 팀장은 그 자신이 공무원 생활의 대부분을 강북지역에서 보낸 만큼 강남북의 균형발전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 재건축·재개발 사업에 대한 규제가 강남북의 격차를 더 심화시킨다는 강북지역 주민들의 불만 역시 십분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서울 전체를 아울러야 하는 서울시 입장에서는 어느 한 지역을 배려하는 정책을 펼치는 것에 사실상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 “서울시 행정에 대해 다소 불만이 있더라도 서울 전체의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해 불가피한 면이 있다는 것을 이해해주기 바라며, 각 단지별이 아니라 구역별, 지역별, 서울 전체별로 범위를 넓혀 생각했으면 한다”고 당부한다.

서울시 주무부서의 주무팀장을 맡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 역시 일개 공무원인 만큼 할 수 있는 역할과 권한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그는 묵묵히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수행해나가고 있다. 오늘도 그는 쉼 없이 쏟아지는 민원을 특유의 웃는 낯으로 성심성의껏 처리하고 있을 게다. 민원이 아예 사라질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에게 쏟아지는 민원이 줄어드는 날이 바로 재건축사업이 투명하고 원활하게 진행되는 그 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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