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되는 것을 되게 해달라는 것은 민원이 아닙니다. 민원인이 두려워 공무원으로서 자신의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면 공무원의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성북구청 건축과 백종년 과장은 ‘민원’에 대해 단호하다. 아니, 그의 말처럼 ‘안 되는 것을 되게 해달라는 것은 민원이 아니니’ 이런 민원 아닌 민원에는 처음부터 강하게 ‘NO!’를 선언한다.

물론 백 과장이 민원에 대해 단호하다고 해서 민원인들의 호소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민원을 해소하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이다. 하지만, 주민 편의를 위해 마땅히 해소해야 하는 민원과, 그렇지 않고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만 이롭거나 아예 법이나 제도상 해결할 수 없는 민원은 당연히 구분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신조이다.

누구나 알다시피 성북구는 서울의 대표적인 구시가지이고, 재개발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다. 장위나 길음 뉴타운처럼 굵직한 개발사업지역도 있고, 관내 자체가 재개발 내지 재건축 대상지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개발해야 할 곳이 많은 곳이다.

그가 맡고 있는 건축과는 24명의 공무원이 건축관리, 건축허가, 재건축, 공공건축 관련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민원 많기로는 건축, 그것도 정비사업을 따라갈 수 없으니, 건축과에도 크고 작은 민원이 끊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민원인에게 휘둘리다보면 정상적인 업무를 수행할 수 없다. 그가 원칙을 강조하며 민원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취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백종연 과장은 “모든 것은 법과 제도에 의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법을 고쳐야만 해결이 가능한 민원을 제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공무원 입장에서는 법에 어긋나게 민원을 해결할 수 없으니 원리원칙대로 할 수밖에 없다”면서 “특히 정비사업은 다수결의 원칙이 적용되는 사업이다. 소수의 목소리가 민원을 제기하더라도 이를 처리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민원인에게 조합원총회 등에서 의견을 개진하고 다른 주민들을 설득하라고 말한다. 그래도 안되면 다수의 의견을 승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원론적이고 정공법을 택하는 것이 오히려 민원해결에 도움이 된다”고 전한다.

그는 83년 강서구청 건축과에 특채되면서 지금까지 30년 가깝게 공무원 생활을 하고 있다. 강서구와 영등포구, 구로구, 양천구, 은평구 등 주로 서울의 서남부 지역에서 근무했고, 서울시청 재건축팀장을 맡기도 했었다. 성북구청 건축과에는 지난해 4월부터 부임해 근무하고 있다.

도시발전을 위해서는 당연히 재건축·재개발을 할 수밖에 없는데, 이런 정비사업 과정에서 벌어지는 각종 분쟁사례들이 담당 공무원인 그의 마음을 어둡게 만들곤 한다. 백 과장은 “정비사업 과정에서 벌어지는 갈등의 대부분은 사실 조합의 주도권을 놓고 벌어지고 있다. 엄밀히 말해 내부 갈등은 내부에서 해결해야 하는데, 그냥 구청에 와서 떼를 쓰곤 한다”며 “이런 민원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구청이 편파적으로 대한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사실, 이때가 가장 곤혹스럽다”고 말한다.

재건축·재개발 사업에 있어서 영원한 숙제인 원주민 재정착 문제도 그의 마음을 어둡게 만든다. 백 과장은 “정비사업은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사업이다. 실제로 도시를 쾌적하고 안락하게 만드는데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다. 문제는 도시적으로는 주거환경이 개선되지만, 부담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결국 재입주를 할 수 없어 주거여건이 더 열악해지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이런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는 현실적인 수단이 아직 없다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고 말한다.

물론 개발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부동산의 가치가 높아져 경제적 이익이 생기는 것은 사실이고, 설령 재입주할 형편이 안 되더라도 이렇게 올라간 재산가치를 이용해 다른 지역에 이주하면 되지 않겠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백 과장은 “돈이 전부는 아니다”고 잘라 말한다. “생소한 지역으로 이주하는 것에 대한 정서적인 부담도 상당하고, 미우네 고우네 하면서 오순도순 살던 주민 공동체가 해체되는 것이 문제이다. 특히 노년층의 경우 막걸리잔 기울이며 정을 나누던 친구들과 헤어지는 것을 못 견뎌 하기도 한다”고 아쉬워한다.

백 과장의 좌우명은 “사적이든 공적이든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와 “어떠한 경우에도 다른 사람의 인격을 무시하지 않는다” 두 가지. 그는 오늘도 때론 민원인을 설득하고, 또 때론 민원인의 주장에 원리원칙대로 강하게 대응하면서 공무원으로서의 자부심을 지켜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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