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사 선정을 무효로 할 각오로 협상하라”

나비효과!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태풍을 일으킨다는 과학이론이지만 근래엔 작고 사소한 사건 하나가 나중에 커다란 결과를 가져온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다소 과장된 표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서초 무지개아파트 주택재건축정비사업에서 구대환 조합장의 존재감을 설명하기에 ‘나비효과’ 만큼 적절한 어휘를 찾기는 어려울 것 같다.

현실적으로 재건축조합의 조합장이나 임원들은 재건축사업이 처음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재건축사업이라는 특수한 형태의, 특히 고도의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사업추진시 미숙함이 나타나는 것을 일방적으로 탓하기엔 무리가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누가 조합장이 되는가 하는 문제는 매우 중요하고 또한 민감한 사항이다. 지지부진하던 재건축사업이 마치 환골탈태 하듯 극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 바로 조합장이란 위치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재건축사업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구대환 조합장은 마치 조합장을 위해 태어난 것 같다. 대학 시절 건축직 기술고시에 합격하고 건축기술사 자격을 취득한 그는 영국 셰필드대학에서 법학박사학위를 취득해 현재 법학전문대학원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건축기술을 베이스로 삼고 법학을 추가함에 따라 조합장직을 수행하기에 가히 최적의 이력을 갖춘 셈이다.

2015년 8월 조합장에 선출되자마자 그는 정비사업의 최대 난제인 시공사 선정에 직면하게 됐다. 구 조합장은 건설사간 치열한 경쟁을 유도하면서 동시에 건설사들로 하여금 다양한 특화 조건을 제시하도록 경쟁적으로 요청함으로써 입찰마감시 시공사들로부터 최상의 제안서를 받아낼 수 있게 되었다.

결국 지에스건설은 지하2층까지로 되어 있던 지하주차장이 지하3층까지로 확대하고, 세대별 광폭 2대 주차공간, 9미터 필로티, 외벽 칼라알루미늄판넬 및 유리커튼월 마감 등의 무상특화가 포함된 입찰제안서를 제출함으로써 서초그랑자이 시공사로 선정될 수 있게 된 것이다.

시공사 선정 이후 도급계약에서도 그는 “시공사 선정을 무료로 할 각오”로 협상에 임했다고 한다. 구 조합장은 공사도급계약 협상에 있어서 선정되기까지 엄청난 홍보비를 사용하고, 수십억의 입찰보증금을 납입한 시공사에 비하여 조합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고지에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구 조합장은 계약협상 도중 좀처럼 입장 차이가 좁혀지지 않아 치열하게 다투다가 어느 한쪽이든 협상장을 박차고 나가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했다고 한다.

이제까지 수많은 조합들이 그렇게 해왔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고 하는 시공사의 주장을 그대로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에 구 조합장은 결코 양보할 수 없었다고 한다. 조합과 시공사 간의 계약에서 관행처럼 받아들이고 있는 사안들이 결국은 조합원에게 부담을 초래하거나 조합을 “을”로 전락시킨다는 사실을 그는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조합장으로서 보낸 5년은 어떤 시간이었을까. 그는 “인생의 황금기를 바쳤다”고 했다. 그는 어떤 사안(사례: 우수디자인, 문주대체 조형물 설치, 커뮤니티시설 업그레이드 등)을 직면하면 자신의 지식과 통찰력으로 사안을 분석하는 한편 일단 조합원 전체에게 이익이고 실행가능한 것으로 판단하면, 자신의 지식과 설득력과 인적네트워크 등 모든 에너지를 다해서 대부분 이루어냈다고 한다.

그렇게 말하며 조합사무실 창문 너머로 “서초그랑자이”를 바라보는 그의 눈은 젖은 듯 빛나고 있었다.

저작권자 © 주거환경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