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성·가성비 뛰어난 효율적 의사결정수단 VS 반대파 악용시 사업추진 혼란 초래

코로나 사태로 전통적 방식의 총회 개최가 어려워진 요즘 전자투표가 교착상태에 처한 정비사업을 구원할 해결사로 등장했다. 하지만 아직 도입초기라서 그런 것일까? 전자투표로 총회를 치른 곳곳에서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어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지난해 11월 전자투표 법제화

코로나로 인한 집합금지 등 비대면 기조가 강조됨에 따라 정비사업은 사업추진 전반에 걸쳐 큰 난관에 처하게 됐다. 정비사업의 특성상 각 사업단계마다 총회를 통해 조합원 결의를 받아야 하는데, 다수의 인원이 한자리에 모이는 총회의 특성상 집합금지 규정으로 인해 사업추진에 제약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특히 시공사 선정의 경우 직접참석자가 50% 이상을 참석해야했기에 어려움은 더욱 컸다. 이에 코로나사태 이후 한동안은 운동장과 같은 야외공간이 총회 장소로 애용되기도 했으며, 유튜브와 같은 동영상 플랫폼이 도입돼 참여방식의 다변화가 모색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접참석 요건을 충족시키기에는 부족함이 많았고, 이를 해결할 새로운 수단으로 전자투표 도입에 이르게 됐다.

 

∥반대파 악용시 막대한 혼선 초래

지난 12월 방배5구역에서 조합에 반대하는 조합원들, 이른바 비대위가 임시총회를 발의·주최해 전자투표 방식으로 조합장과 총무이사 해임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전자투표 관련 절차적·실체적 하자로 인해 총회 결과가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합 내부적으론 총회결과를 둘러싼 유무효 논란으로 인해 사업추진이 중단돼 막대한 손실을 보는 상황이다.

지난 14일 한남3구역에서도 정비업체 선정 등 중요 안건을 다루고자 전자투표 방식을 통해 총회를 치렀다. 전체 조합원 중 85%에 달하는 높은 참석율을 보인 가운데 총회는 비교적 무난하게 마무리됐다. 그러나 조합원 일각에서는 전자투표 진행과정과 업체 신뢰도 등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어 논란의 여지는 남아있다.

조합 입장에서 전자투표는 장점이 많고 효율성이 뛰어난 의사결정수단임에 분명하다. 휴대폰만 있으면 간단한 본인인증을 통해 투표할 수 있어 편의성이 뛰어나다. 또한 서면결의서 징구와 현장 투표 관리 등 많은 인원을 필요로 하지 않기에 가장 많은 예산이 소모되는 인건비를 크게 절감할 수 있다.

더군다나 적은 비용으로도 90%에 가까운 높은 참석률을 이끌어낼 수 있어 가성비 측면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보인다. 직접참석으로 인정되지 않는 서면결의서와 달리 전자투표는 직접참석으로 인정되기 때문이다. 참석률 제고에 막대한 시간과 돈을 투입해야하는 조합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유용한 수단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처럼 막강한 전자투표를 비대위가 사용한다면 어떨까? 앞서 언급한 방배5구역 사례와 같이 너무나 쉽고 간편하게 집행부를 무력화할 수 있는 치명적 단점을 안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과거와 달리 SNS를 통한 다량의 정보가 쏟아지는 현 시대에 소수의 비대위만 확보해도 무분별한 전자투표의 남용으로 인해 순조로운 사업추진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관련법령은 ‘미흡’ 인허가청은 ‘뒷짐’

앞서 언급한 방배5구역과 한남3구역 등의 사례를 살펴보면 전자투표 활용시 지적된 문제점으로 첫 번째가 인허가청의 승인을 받았는지 여부다. 방배5구역은 구청의 인정을 받지 못했지만 한남3구역은 인정을 받은 케이스다.

이와 관련 도시정비법 제45조제8항에 따르면 “제5항에도 불구하고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제3조제1호에 따른 재난의 발생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유가 발생하여 시장ㆍ군수 등이 조합원의 직접 출석이 어렵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전자적 방법(「전자문서 및 전자거래 기본법」 제2조제2호에 따른 정보처리시스템을 사용하거나 그 밖의 정보통신기술을 이용하는 방법을 말한다)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 경우 정족수를 산정할 때에는 직접 출석한 것으로 본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한 서울시가 밝힌 '조합 총회 전자의결 Q&A'에 따르면 시장·군수 등이 조합원의 출석이 어렵다고 인정하는 경우에 대해 규정에 따라 자치구청장이 개별구역의 현황 등을 고려해 판단해야할 사항이라며 애매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인허가청의 인증에 필요한 구체적인 기준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기에 자치구마다 제각각의 입장인 상황이다.

또 다른 문제로 지적되는 사항이 전자투표를 담당할 업체선정에 대한 사항인데, 이에 대해 서울시는 “과거 전자투표를 진행하면서 본인확인, 결의내용 공개 등과 관련 민원이 발생한 바 있으니, 이를 고려하여 업체를 선정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본다”고 답하고 있다. 정작 중요한 업체선정 기준에 대해서는 ‘조합이 알아서 잘 선정하라’는 의미여서 분쟁의 빌미를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 방배5구역과 한남3구역의 사례에 따르면 총회 당시 전자투표로 진행된 총 투표결과를 공개했지만 개별 투표자료를 공개하지는 않았다. 방배5구역의 경우 총회 이후 45일이 지난 이후 발의자측에서 개별 투표자료를 공개했지만 해당 자료에 투표일시가 기재되지 않아 조작 의혹이 불거진 상태이다.

도시정비법이 전자투표의 근거로 제시한 전자문서법 제2조제2호에 따르면 정보처리시스템이란 전자문서의 작성·변환, 송신·수신 또는 저장을 위해 이용되는 정보처리능력을 가진 전자적 장치 또는 체계를 말한다. 또한 전자문서법 제4조의2(전자문서의 서면요건)에 따르면 전자문서는 ‘전자문서의 내용을 열람할 수 있을 것’과 ‘전자문서가 작성·변환되거나 송신·수신 또는 저장된 때의 형태 또는 그와 같이 재현될 수 있는 형태로 보존되어 있을 것’으로 명시하고 있다.

전자문서법에서 명시한 전자문서의 ‘정의’와 ‘서면요건’에 따르면 투표결과만을 공개하는 현행 전자투표 방식으로는 온전한 총회 의결로 보기에 무리라는 판단이다. 최근 전자투표를 사용한 정비사업장에서 총회결과의 적법성을 두고 분쟁이 발생하는 까닭이다.

 

∥제도 보완 및 업체선정 신중해야

현재 전자투표는 양날의 검처럼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누가 사용하는가와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희극과 비극이 교차하는 형국인 것. 전자투표 관련 현행 법령은 문만 열었을 뿐 조합에게 모든 짐을 던져놓은 상황이기에 추가적인 제도보완이 필요하다.

아울러 전자투표의 시장성을 보고 섣불리 달려드는 함량미달의 업체를 걸러내는 선구안도 필요하다. 전자투표업체 관계자는 “정비사업에 밝지 못한 신생업체의 경우 비대위 등에 의해 도구로 사용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면서 “공정성과 신뢰도가 입증된 탄탄한 업체를 선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주거환경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