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이냐 신탁이냐’ 각각의 장단점 파악 후 사업장 여건에 맞게 선택해야

신탁방식이 안정적 자금조달과 조합 임원 관련 비리 방지, 시공사 리스크 관리 등 여러 장점을 바탕으로 정비사업에서 비중이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신탁방식이 만능 키처럼 정비사업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빛과 그림자가 있듯이 신탁방식에도 단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정상적으로 활동 중인 기존 추진주체의 헤게모니를 무너트리기 위한 명분으로 신탁방식이 악용되는 폐해도 나타나고 있다. 이에 조합과 신탁, 두 사업방식에 대한 장단점을 짚어보기로 한다.

 

∥신탁방식의 도입배경 및 확장세

신탁방식이란 토지등소유자가 사업주체인 조합을 설립하는 것과 달리 신탁사를 사업시행자로 삼아 사업추진의 전권을 맡기는 방식이다. 이 때 토지등소유자는 주민대표기구인 정비사업위원회를 구성해 주민의견수렴의 창구역할을 맡는다.

신탁방식은 2016년 3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하 도시정비법)’ 개정을 통해 정비사업에 도입됐다. 당시 개정사유에 따르면 정비사업이 사업성 저하 및 주민 갈등 등으로 지연·중단됨에 따라 정비사업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 공공의 역할 확대와 더불어 신탁사의 참여를 허용했다.

사실 정비사업에서 공공의 역할 확대는 오래전부터 논의돼왔던 사안이다. 다만 기본적인 토대가 민간사업인 정비사업에서 공공이 참여하는 데에는 여러 제약사항이 있었고, 그 부족한 틈새를 메우고자 신탁사의 참여를 허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시 말해 사업성이 열악하거나 내부 갈등으로 사업추진이 어려운, 그런 특정한 케이스에 대해 신탁사의 참여를 허용한 부분에 그 맥락이 있다 할 것이다.

신탁방식이 근래 들어 급성장한 까닭에는 정비사업의 특성상 조합방식이 지닌 구조적 취약성에 기인한 탓이 크다. 조합방식은 시공사를 선정하기 전까지는 자금조달이 어려우며, 사업주체인 조합의 경우 토지등소유자를 구성원으로 하기에 주택사업 관련 전문성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이런 미흡한 전문성과 사업 초기 자금조달이 어려운 현실은 협력업체와의 비리 가능성을 높였다. 시공사 선정 이후에는 자금조달을 빌미로 사업추진의 주도권이 시공사로 넘어가는 일도 많았다. 이는 차후 공사비 증액 등 공사계약을 둘러싼 분쟁으로 이어지기도 하여 많은 문제를 야기했다. 이 같은 조합방식의 취약성에 실망한 이들이 대안으로 신탁방식을 찾는 일이 늘어나게 됐다.

 

∥신탁방식의 취약성

신탁방식의 취약성과 관련해 ‘절차 간소화’, ‘재원조달’, ‘투명한 사업추진’, ‘시공사 리스크 관리’ 등 정비사업을 추진함에 있어 중요한 네 가지 요소를 기준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먼저 절차 간소화의 경우 신탁방식은 추진위 승인 및 조합설립인가 절차를 생략할 수 있다. 다만 그 대신에 사업시행자 지정 절차가 필요하다. 여기엔 조합설립과 동일한 동의조건과 더불어 전체 면적의 1/3 이상의 토지에 대해 신탁등기를 받아야 하는 추가 조건이 있다.

물론 조합방식에서도 신탁등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조합방식의 신탁등기는 관리처분계획 인가 이후 이주·철거 단계에서 진행된다. 아직 사업계획이 완성되지 않은, 사업시행자 지정 단계에서 신탁등기를 요구하는 것은 토지등소유자에게 적지 않은 부담을 주기 마련이다.

또한 조합방식에서도 정비계획 입안시 공공지원에 의한 조합직접설립 방안이 제시돼 추진위 승인 없이 곧바로 조합설립이 가능하도록 제도개선이 이뤄졌다. 신탁방식이 조합방식에 비해 절차간소화 효과가 있다고 단언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두 번째 재원조달의 경우 신탁방식은 사업시행자 지정 이후 자금조달 및 시공사 선정이 가능해 조합에 비해 사업초기 안정적 사업추진이 가능했다. 하지만 최근 서울시 도시정비조례 개정을 통해 오는 7월부터 조합설립인가 이후로 시공사 선정이 단축됨에 따라 신탁방식이 지녔던 우위는 사라졌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신탁방식이라 해서 자금조달이 항상 원활한 것은 아니다. 이와 관련 지난 2019년 1월 부산의 A조합과 B신탁사는 사업대행형 신탁계약을 체결했는데, 조합이 요청한 설계업체 등 협력업체 차용금과 계약금을 신탁사가 지급하지 않아 계약이 해지된 사례가 있었다.

이와 관련 판례에서 미지급 사유가 공개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주민들이 기대하는 것만큼 신탁사의 자금조달 여력이 충분한지 여부가 불투명하다는 점을 추정할 수 있다. 근래 신탁시행자로 지정되는 신탁사를 살펴보면 상위에 포진한 소수의 신탁사로 집중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신탁사가 조달해야할 자금규모가 크게 늘어나 조달능력에 한계를 보이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세 번째 투명한 사업추진 관련 신탁방식에서 협력업체와의 계약주체는 신탁사이다보니 주민과 협력업체간 비리를 방지하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이는 역설적으로 토지등소유자의 주체성 및 자율성을 제한하기도 한다.

토지등소유자를 대표하는 ‘정비사업위원회’를 구성하지만 이는 주민 의견 수렴과 신탁사를 연결하는 역할을 맡을 뿐 실제 사업주체로서의 역할은 인정받지 못한다. 물론 토지등소유자 ‘전체회의’를 통해 시공사 선정과 토지등소유자에게 부담이 되는 사항 등 굵직한 안건을 의결하지만 실무적으로 세부 사안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의견 반영이 어렵다.

네 번째 시공사 리스크 관리 부분 역시 과거에는 조합에 비해 상대적으로 전문성을 확보한 신탁방식에 유리한 부분이었다. 하지만 지속적인 제도개선을 통해 공사비 검증 의무와 관리처분계획 타당성 검증 등 기존 조합방식의 취약성을 보완함에 따라 신탁방식의 장점이라 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밖에 토지등소유자와 신탁사간 의견차로 인해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신탁사에 의해 진행된 모 용역계약에 대해 토지등소유자들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거나 사업비 절감이나 토지등소유자의 권익 보호보다는 신탁사 편의에 의한, 토지등소유자의 과도한 손실을 유발하는 사업추진을 강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사유로 토지등소유자가 신탁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 신탁사측의 하자를 증명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또한 토지등소유자가 제각각인 상황에서 소 제기 당사자를 누구로 정의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상당한 혼란이 있을 수 있다.

정리하면 신탁방식 또한 장점과 단점이 공존한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으며, 결국 각 사업장 여건에 적합한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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