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정법 개정, 신탁방식 특례 허용 … 신탁사, 자금난·인력난 ‘우려’

근래 정비사업에서 신탁방식을 채택하는 사업장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이렇듯 신탁방식에 대한 안팎의 관심이 커짐에 따라 지난 달 시행된 도시정비법 개정안에는 신탁방식에 대한 사업시행 특례가 적용되기도 했다.

2016년 도시정비법 개정을 통해 도입된 정비사업 신탁방식은 정비구역의 토지등소유자나 조합으로부터 위임을 받아 정비사업을 시행 또는 대행하는 개발신탁의 한 형태를 말한다. 신탁사가 사업주체가 되는 단독시행자 방식과 사업시행자로서 조합이 구성된 상태에서 사업추진을 대행하는 사업대행자 방식이 있다.

신탁방식은 기존 조합방식이 지닌 구조적 취약성을 보완하고자 출발했다. 사업주체인 조합은 토지등소유자를 구성원으로 하기에 재건축·재개발과 같은 특수한 형태의 주택사업에 대해 전문성이 부족하다. 또한 사업추진에 필요한 자금조달 관련 현실적인 장벽으로 인해 초기 사업추진에 애로사항이 많다.

신탁방식은 이 같은 조합의 부족한 전문성과 자금력을 보완하기에 적절한 포지션을 지니기에 대안으로 평가받고 있다. 더군다나 근래 급증한 공사비로 인해 조합과 시공사간 분쟁이 빈번하게 발생함에 따라 공사비 검증을 위해 신탁사의 필요성이 더욱 커지는 모양새다.

그러나 한편으론 신탁방식을 필요로 하는 사업장이 크게 늘어남에 따라 신탁사가 토지등소유자 및 조합원에게 제공해야할 양질의 서비스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다는 지적이 일기도 하다. 신탁방식을 필요로 하는 수요만큼 자금력과 전문성을 지닌 신탁사가 제한적이기에 함량미달의 신탁사가 사업시행자로 선정돼 결국 조합 및 토지등소유자에게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의견인 것.

과연 폭증하는 수요에 신탁사들은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까.

 

∥신탁방식 사업시행 특례 적용

지난 6월 30일 국회를 통과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은 7월 18일 공포됐으며 6개월 후에 시행된다. 이번 개정안 중 신탁방식 관련 공기업과 신탁업자 등 전문개발기관이 사업을 시행할 경우 정비구역 지정 제안 권한을 부여하는 한편 정비구역과 사업시행자 동시 지정, 정비계획과 사업시행계획의 통합처리 등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할 수 있도록 하여 신속한 사업추진을 모색하고 있다.

이는 LH와 같은 공공시행자와 신탁사가 사업을 시행하는 것에 대해 주민동의 등 일정 요건을 갖춘 사업장에 한하여 정비계획 수립 없이 정비구역 지정을 먼저 제안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후 정비계획과 사업시행계획을 통합 수립해 정비사업의 신속한 추진을 유도하는 방안이다.

현행 정비사업 프로세스에 따르면 정비구역 지정과 정비계획 수립은 동시에 진행돼왔다. 정비구역 지정 절차가 구역계를 정하는 비교적 간단한 절차인 반면, 정비계획은 해당 정비사업의 뼈대를 만드는 작업으로서 통상 마스터플랜에 비유된다.

정비구역 지정 및 정비계획 수립 주체는 관할 지자체가 담당하지만 예산부족과 지원역량의 한계 등의 사유로 인해 대부분이 주민제안 형태로 이뤄져왔다. 하지만 추진위 구성조차 하지 못한 주민들이 자체적인 자금조달을 통해 구역지정 및 정비계획 수립을 진행하는 것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또한 어렵게 계획안을 마련해도 지자체와의 지난한 협의를 거쳐야하는 것도 난관으로 지적돼왔다. 정비계획은 사업구역내 주택용지의 면적과 용도, 도로와 학교, 공원 등의 기반시설의 종류와 면적, 용적률과 건폐율 그리고 층수 등 사실상 해당 정비사업의 개발밀도를 규정하기에 사업성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이와 관련 인허가권자 입장에서는 공공성을 확대하고자 기반시설 확충에 집중하는 한편 사업주체인 토지등소유자는 용적률과 같은 사업성을 중시하는 입장 차이로 인해 협의 과정에서 충돌을 빚어왔던 것.

하지만 이번 개정안을 통해 정비구역과 정비계획을 분리하고, 비용과 시간이 많이 소모되는 정비계획과 사업시행계획 수립과정을 전문성과 자금력을 갖춘 기관(LH, 신탁사 등)이 담당한다면 사업초기 신속하고 원활한 사업추진에 일조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일각에서는 정비계획과 사업시행계획의 동시 수립에 대해 우려의 시각도 제기된다. 도시계획에 가까운 정비계획과 건축계획의 성격을 지난 사업시행계획을 동시에 진행할 경우 고려해야할 변수가 늘어나 오히려 의견조율 과정이 힘들어질 것이란 의견이다.

이밖에도 이번 개정안은 그간 문제점 중 하나로 지적됐던 불공정 계약 관행을 보완할 대안도 제시됐다.

과거 신탁사와 주민단체간 계약사례를 살펴보면 신탁사가 토지등소유자의 권익보호 보다는 자사의 편의에 따라 사업을 진행해도 이를 제어할 수단이 여의치 않았다. 이와 관련 신탁계약을 해지하려 해도 토지등소유자 전원 동의를 요하거나 수탁자의 귀책사유 없이는 계약해지가 불가능하도록 하여 주민측에게 불리한 요소로 작용해왔다.

개정안에 신설된 제27조제6항에 따르면 “국토교통부장관은 신탁업자와 토지등소유자 상호 간의 공정한 계약의 체결을 위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표준 계약서 및 표준 시행규정을 마련하여 그 사용을 권장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자금력 고갈, 부족한 전문인력 ‘우려’

지난 달 공포된 도시정비법 개정안에 의해 표준계약서 마련 등 미흡했던 약점을 일정 부분 보완함에 따라 신탁방식을 선택하는 사업장은 늘어날 전망이다. 그러나 신탁방식을 선택하는 사업장이 많아질수록 신탁사가 제공할 수 있는 업무역량의 한계에 대해 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서두에 언급한 바와 같이 정비사업에 어두운 일반 토지등소유자가 신탁사를 선택하는 이유는 안정적으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자금력과 전문성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탁사를 선택하는 사업장이 많아질수록 개별 신탁사당 자금조달능력과 전문성을 떨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전문성이란 분야는 결국 해당 업체가 보유한 전문인력의 숫자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신탁사가 보유한 인력이 일반 토지등소유자에 비해 주택개발사업에 밝은 것은 사실이지만 신탁업무의 특성상 정비사업에 특화된 인력이라고 정의하기엔 부족함이 있다. 또한 신탁사가 정비사업에 진출한지 7년째를 맞이하고 있지만 본격적으로 활성화된 것은 몇 년 되지 않았다. 정비사업 전문인력을 얼마나 많이 보유하고 있을지 미지수인 것.

근래 들어 신탁사에서 급하게 인력을 충원하고 있다지만 일선 현장을 진두지휘할 정도의 역량을 지닌 고급인력을 양성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정비사업을 원만하게 진행할 정도의 역량을 갖추기엔 수년 이상의 현장경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주거환경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