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무경험 풍부한 ‘조합임원’ 출신 전문조합관리인 체제로 대응하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는 없다.”

조합장을 설명하는 말이다. 재건축·재개발 등 도시정비사업의 조합원이나 관련 업계 종사자라면 대부분 공감할 만한 글귀이지 싶다. 도시정비법 제정 등으로 재건축·재개발사업이 주택시장의 한 축을 담당해온지도 어언 20년이 흘렀다.

그간 정비사업을 둘러싼 여러 이슈가 나타나고 사라지곤 했지만 조합장을 둘러싼 논란만큼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뜨거운 감자로 헤드라인을 차지하고 있다. 아마 정비사업이 존재하는 한 조합장에 대한 시시비비는 꺼지지 않을 것 같다.

대기업이 오너 리스크에 시달리듯이 정비사업은 조합장 리스크에 몸살을 앓고 있다. 한편으론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라는 말처럼 정비사업 또한 유능한 조합장을 만나면 값진 성과를 거두는 사례를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보통 미디어에서 리스크를 위기로 표현하고 있지만 이는 잘못 표현된 사례다. 위기가 아닌 불확실성으로 해석하는 것이 올바른 표현일 것이다. 즉 어떤 조합장을 만나느냐에 따라 위기에 빠질 수도 있고, 성공의 사다리를 올라타는 기회일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정비사업의 구조적 특성을 생각한다면 유능한 조합장을 만나는 복을 누릴 확률은 사실 낮은 편이다. 왜냐하면 사업주체인 조합 집행부 대부분이 정비사업을 생전 처음 접하는 초보자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정비사업을 진행하는 상당수 조합이 시행착오를 겪으며 조합장 해임이라는 분란에 빠지곤 한다. 집행부에 대한 불신으로 갈등이 심화돼 더 이상 사업추진이 곤란한 경우도 종종 발생하는데, 이런 난국을 해소할 방안으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하 도시정비법)」은 전문조합관리인 제도를 두고 있다.

 

∥전문조합관리인 제도에 대해

도시정비법 제41조제5항에 따르면 시장·군수 등은 조합임원이 사임, 해임, 임기만료, 그 밖에 불가피한 사유 등으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때부터 6개월 이상 선임되지 않거나, 총회에서 조합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조합원 과반수 동의로 전문조합관리인의 선정을 요청하는 경우에 변호사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요건을 갖춘 자를 전문조합관리인으로 선정해 조합임원의 업무를 대행하게 할 수 있다.

상기 조항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요건을 갖춘 자란 첫째 변호사, 공인회계사, 법무사, 세무사, 건축사, 도시계획·건축분야 기술사, 감정평가사, 행정사에 해당하는 자격을 취득한 후 정비사업 관련 업무에 5년 이상 종사한 경력을 지닌 사람을 말한다.

둘째는 조합임원으로서 5년 이상 종사한 사람이며, 셋째 공무원 또는 공공기관의 임직원으로 정비사업 관련 업무에 5년 이상 종사한 사람, 넷째 정비사업전문관리업자(이하 정비업체)에 소속돼 정비사업 관련 업무에 10년 이상 종사한 사람, 다섯째 건설산업기본법에 따른 건설사업자에 소속돼 정비사업 관련 업무에 10년 이상 종사한 사람을 가리킨다. 그밖에 상가 다섯 가지 경력을 합산한 경력이 5년인 사람도 해당된다.

시장·군수 등은 상기조항 단서에 따른 전문조합관리인의 선정이 필요하다고 인정하거나 조합원 1/3 이상이 요청하면 공개모집을 통해 전문조합관리인을 선정할 수 있다. 사실 전문조합관리인 제도는 지난 2016년 도시정비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도입됐지만 실제 적용된 사례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높은 업무 강도에 비해 열악한 급여수준, 외부 인사에 대한 조합원의 반발 등 여러 장벽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조합임원 출신 전문조합관리인의 필요성

2019년 4월 전문조합관리인 제도는 법 개정을 통해 변화의 계기를 마련했다. 조합임원으로서 5년 이상을 종사한 사람에게도 전문조합관리인의 자격을 부여한 것이다. 변호사 등 분야별 전문가를 전문조합관리인으로 활용하도록 제도를 마련했지만 실제로 적용된 사례가 매우 드물어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맛을 안다고 했던가. 변호사 등의 전문가로 해도 해당 분야에 한해서만 역량을 발휘할 뿐 조합장으로서 정비사업의 전반을 이끌어나가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사업주체가 아닌 조력자 입장에서 정비사업에 참여했기에 경영자로서의 업무능력 측면에서는 부족하다는 것.

이와 관련 연희1구역 재개발조합의 이재식 전문조합관리인은 “전문조합관리인으로서 가장 중요한 역량으로 조합 업무에 대한 경험이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면서 “정비사업을 효율적으로 진행하기 위해선 각 절차별 프로세스를 비롯해 조합원의 생리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부분들은 하루아침에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년간의 시행착오를 겪으며 직접 체험하며 축적할 수밖에 없다”면서 “비록 그 분들이 해당 방면에 전문가라 해도 현장감각은 부족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전문조합관리인 제도의 개선사항

전문조합관리인 제도가 조합임원 출신 전문가를 등용하며 실효성을 높였다지만 제도적으로 손 볼 곳 또한 적지 않다. 우선적으로 거론되는 사안이 시급한 처우 개선 부분이다.

현재 전문조합관리인의 급여 수준은 대략 연봉 기준 5천만원 안팎으로 형성되고 있다. 5년 경력의 변호사가 못해도 억대 연봉 수준인 점을 고려하면 너무 열악하기만 하다. 기존의 절반에 불과한 급여 수준에, 말 많고 탈 많은 업무환경을 고려할 때 변호사와 같은 고급인력이 조합에서 일할 맘이 날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연희1구역 이재식 전문조합관리인은 “우선적으로 처우 문제가 개선되어야 능력 있는 분들이 참여해 선순환이 일어날 것”이라면서 “책임만 있고, 그에 합당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누가 참여할 것인가?”라며 시급한 처우개선을 주문했다.

한 푼이라도 절감하고자 하는 조합원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많은 조합이 집행부의 부족한 전문성과 일천한 경험으로 인해 사업추진에 막대한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로 인한 허공에 뿌린 사업비만 해도 적게는 수십억원에서 수백억원에 달할 것이다. 이와 같은 숱한 사례를 고려할 때 전문조합관리인에게 지급하는 1억원의 기회비용은 결코 손해가 아니라 판단된다.

해임 규정 마련도 중요한 개선방안 중 하나다. 현재 도시정비법에 따르면 전문조합관리인의 선임 규정은 있지만 해임 규정은 마련되지 않았다.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전문조합관리인인 경우 해임하려 해도 관련 규정이 없어 난처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것.

일각에서는 선임 규정을 준용하는 방안이 제시되기도 한다. 총회 결의를 바탕으로 조합이 해임을 요청하면 시장·군수가 해임하는 형태다. 하지만 조합임원과 달리 전문조합관리인에 대한 명시적 해임규정이 없기에 논란이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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