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공공성 위한 안전기준 등 절차 강화 … 조합 “정치적 이익 위해 리모델링 희생양 삼아”

“안전성. 중요하죠. 하지만 1층을 필로티로 하는 리모델링을 처음 하는 것도 아니고 이미 십여 개 단지가 필로티를 하면서 지금까지 문제가 없었는데. 도대체 왜 그런지. 결국은 리모델링을 하기 싫어서, 그것을 위한 핑계라고 생각해요.”

시공사 선정 시기 단축 등 재건축·재개발 활성화를 위한 규제완화와 달리 공동주택 리모델링을 대하는 서울시의 입장은 차갑기만 하다. 국토부와 정치권, 그리고 경기도 등 각계각층에서 리모델링 활성화를 부르짖는 것과 달리 오직 서울시만이 리모델링을 삐딱하게 바라보고 있다.

공식적인 이유는 리모델링이 안전하지 못하다는 것이 가장 크다. 지난 7월 서울시는 ‘공동주택 리모델링 안전기준 개선방안’을 마련해 각 지자체에 배부했다. 상기 안전기준에 따르면 수평증축도 수직증축과 동일하게 강화된 안전기준을 적용받도록 하고 있다.

아울러 최근에는 1층을 필로티로 변경시키는 리모델링 방식에 대해서도 과거와 달리 수직증축의 형태로 간주하고, 수직증축에 필요한 안전기준을 적용시킨다는 방침을 내놓아 리모델링 조합 관계자들을 당혹케 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미 관련 인허가를 통과한 현장에 대해서도 소급적용을 받아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어 그 파장이 커질 전망이다.

 

∥서울시 리모델링 추진 현황

지난 9월 발표된 ‘서울시 공동주택 리모델링 기본계획’에 따르면 2023년 3월 기준 준공 완료된 리모델링단지는 총 17곳이며, 사업을 추진 중인 곳은 68곳(착공단지 4개소 포함)에 달한다. 준공된 17개 단지의 경우 세대수 증가형 리모델링은 없으며, 대부분 평면확장 및 저층부 수직증축을 통한 필로티 공간확보의 형태를 보였다. 최근 추진 중인 곳들은 수직증축을 통한 세대수 증가형이 대부분이며 향후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다.

한편 서울시엔 총 4217곳의 공동주택 단지가 있다. 이와 관련 리모델링 수요예측에 의해 분석한 결과 2030년 기준 4217개 단지 중 재건축 가능단지 878곳, 세대수 증가형 리모델링 가능 단지 898곳, 맞춤형 리모델링 가능 단지 2189곳, 일반적 유지관리 단지 243곳으로 도출됐다.

맞춤형 리모델링이란 세대수 증가 없이 기존 주거의 성능유지 및 선택적 향상을 위한 시설개선 또는 이를 위해 대수선, 수평증축을 통한 세대확장/구분형 개조를 곁들이는 방식을 말한다. 세대수 증가형 리모델링에 따른 증가 세대수는 증가범위 최대치인 15%를 적용해 11만6164세대가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상기 수요예측 결과에 따르면 서울시내 전체 공동주택 단지 가운데 약3/4에 달하는 3096곳의 단지가 리모델링 추진이 가능하다는 것. 이는 몇 년 이래로 리모델링이 재건축·재개발을 누르고 기성 시가지 정비사업의 대세로 떠오르리란 점을 시사한다.

 

∥리모델링 안전진단 개요

현재 기존 건축물의 구조 성능을 확인하기 위한 리모델링 안전진단 절차는 이주 전·후 단계로 구분해 1차 안전진단과 2차 안전진단으로 나뉘어 이뤄진다. 1차 안전진단은 조합설립인가 이후 실시되는데, 증축형 리모델링 가능 여부의 확인 및 구조 안전성 평가를 위한 현장조사, 기존 구조도의 적정성 평가, 도면 작성을 목적으로 이뤄진다.

평가 결과는 재건축과 반대로 건축물이 구조적으로 안전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만 증축형 리모델링이 가능하다. 구체적으로 건물 모두가 B등급 이상이면 수직증축형 리모델링이 가능하다. 어느 하나라도 D등급 이하가 나오면 증축 리모델링은 불가하다. 그 외의 경우 수평증축 리모델링이 가능하다.

2차 안전진단은 수직증축 리모델링이 허가된 후 이주 후(마감재 철거 후)에 시행된다. 1차 안전진단에서 평가한 구조안전성 등에 대한 상세확인과 수직층죽 리모델링 구조설계(안)의 구조안전성 평가 및 설계변경 필요 여부의 확인을 목적으로 이뤄진다.

 

∥더욱 강화되는 안전기준

지난 7월 서울시는 공동주택 리모델링 안전기준 개선방안을 마련해 일선 자치구 및 관련 부서에 행정지침으로 전달해 방침 수립 후 즉시 시행토록 했다.

상기 안전기준에 따르면 먼저 수평증축에도 수직증축과 동일한 안전기준을 적용토록 하고 있다. 1차 안전진단으로 끝나는 수평증축과 달리 수직증축의 경우 1차 안전진단(리모델링 가능여부 판단), 1차 안전성 검토(기본설계도서 검토), 2차 안전성 검토(실시설계도서 확인), 2차 안전진단(마감재 철거 후 구조 확인) 등의 네 단계를 거친다.

두 번째로 해체공사시 건축구조기술사 검토 의무화 및 감리자 점검 주요공정을 추가해 구조검토를 강화하는 한편 건축구조 및 해체 심의 통합을 통해 절차 개선을 도모한다. 이어 리모델링 공사시 공사장 통합 점검 및 주요 공정 영상 촬영 등 현장 점검 강화를 모색한다. 이와 관련 향후 관련 법령 등 개정을 통해 제도화를 추진할 방침이다.

리모델링조합 관계자에 따르면 2차 안전성 검토에만 2년이 걸린다고 하는데, 상기 절차를 모두 진행할 경우 몇 년이나 소요될지 가늠하기 어렵다. “이럴 거면 처음부터 수평이 아닌 수직증축을 진행하는 것이 낫다”는 원성이 나올법하다.

안전기준 강화로 혼란스런 가운데 서울시는 또 한번의 결정타를 날렸다. 국토부 유권해석을 바탕으로 1층을 필로티로 리모델링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수직증축 관련 안전기준을 적용하도록 지시한 것.

이와 관련 서울시는 “세대수가 증가하지 않는 수직증축(1층을 필로티로 전용하고 최상층을 증축하는 경우 포함) 리모델링의 경우 조합설립인가 여부와 관계없이 「주택법」 제68조 제4항 전단 및 제69조 제2항 등에 따른 안전진단 및 안전성 검토 등을 이행해야 함을 알려드린다”고 밝혔다.

그간 1층을 필로티로 전용하고 최상층 1개층을 증축하는 경우에는 세대수가 늘어나지 않기에 수직증축이 아닌 수평증축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이번 조치로 1층을 필로티로 전용하는 리모델링 방식도 수직증축으로 간주됨에 따라 보다 강화된 안전진단 기준 등을 적용받게 된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위와 같은 강화된 기준이 이미 관련 인허가를 통과했던 사업장에 소급 적용될 경우 그 피해가 상당할 수 있다. 1차 안전진단과 안전성 검토를 마치고 이주했거나 이주 중인 경우 2차 안전진단을 거쳐야 한다면 사업기간이 크게 늘어날 것이다. 이미 이주한 상황에서 그에 따라 발생하는 금융비용 등 막대한 사업비 부담을 누가 책임질 것인지 우려스럽기만 하다.

 

∥오세훈 “리모델링 진작시키는 정책은 어렵다”

서울시 리모델링 정책이 강화 일변도로 치닫는 중심에는 오세훈 시장이 있다. 지난 8월 31일 열린 서울시의회 본회의에 참석한 오 시장의 발언에 그 의중이 잘 나타난다.

이날 회의록에 따르면 오세훈 시장은 공동주택 리모델링이 전임 시장 및 정권에서 재건축·재개발에 대한 적대적 입장에 기반해 추진됐으며, 그 가운데 재산증식의 수단으로 활용된 측면이 있다며 부정적 의견을 나타냈다. 또한 기존 골격을 놔두고 진행되는 리모델링의 특성상 구조적 안전성에 우려를 나타냈다.

이에 따라 재건축·재개발, 모아주택 등이 활발하게 진행되는 상황에서 리모델링을 지원할 정책적 수요가 많지 않으며, 안전성 문제나 자원 낭비 측면에서 리모델링을 진작시키는 정책을 쓰는 것은 분명히 어렵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서울시의회 최재란 의원은 “리모델링이 재건축·재개발보다 위험하고 부실하다는 서울시의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다”면서 “2003년 준공 후 입주한 14개 리모델링 단지 중 서울시 집합건물분쟁조정위원회에 건물의 하자에 관한 분쟁이 접수된 곳은 20년 동안 단 한 곳도 없다”며 안전성 논란에 일침을 가했다.

이어 “나 홀로 아파트나 90년대 300% 가까운 용적률로 건축한 곳은 재건축이 불가능해 리모델링을 할 수밖에 없는데, 이런 상황에 처한 시민들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면서 “시장의 주력사업인 신속통합기획, 모아타운 같은 재건축·재개발 위주 사업에만 집중하고 있다”고 편향적 입장을 비판했다.

이와 관련 리모델링조합 관계자는 “겉으론 안전을 이유로 내세우고 있지만 일선 조합에서는 전임 정권에 대한 정치적인 대립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며 날선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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